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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훈

여주 출신인 윤태훈은 1905년 11월 「을사늑약(乙巳勒約)」으로 일제에 의해 자주적 외교권이 박탈되고 이듬해 1월 통감부(統監府)가 설치되어 국왕의 통치권이 현저하게 손상되는 국망의 상황이 도래하였다. 이렇게 되자 우리 민족은 본격적인 반일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하게 된다. 당시 그것은 크게 두 방향에서 전개되었다. 하나는 장기적인 실력양성운동으로 신문과 잡지를 통한 언론활동, 종교와 그 단체를 통한 종교활동, 각종 학회와 사립학교 설립을 통한 교육활동, 국어와 국사연구를 통한 학술활동 등 각 방면의 국민계몽운동으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즉각적인 무력투쟁인 의병운동으로 전개되었다. 특히 1907년 7월 「정미7조약」에 따른 군대해산으로 해산된 군인들이 대거 의병대열에 참여함으로써 전국적인 국민투쟁으로 확대되고 있었다.

1907년 음력 10월25일 박장호(朴長浩)의진에 투신하여 활동하였으며 같은 해 12월 20일 박성춘(朴聖春) 등 30여 명의 동료 의병과 함께 강원도 평창군 연평면(蓮坪面) 녹산(鹿山)에서 일본군 진부(珍富)수비대 병사들과 교전하는 등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84, 『독립운동사자료집』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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