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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필희

여주 사람이다. 1919년 당시 경성농업학교(京城農業學校) 학생으로 여주군 북내면(北內面) 장암리(長岩里)에 거주하였으며, 이곳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그는 본래 손병희(孫秉熙)를 따랐으며 여주군의 독립만세운동 책임자로서 군내 각 면으로 돌아다니며 태극기를 만들고 독립정신을 고취하여 독립만세운동을 벌이도록 계몽하였다.

1919년 4월 5일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기 위하여 동지들과 같이 협의한 후 여주군 내에서의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때 북내면 공북국민학교에서 미리 준비해둔 태극기를 들고 군중을 지휘하며 독립만세를 고창하면서 시위행진을 하다가 일본헌병에게 피체되었다. 그리하여 이해 5월 2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위반으로 징역 1년 6월형을 언도받았고 7월 13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고 징역 8월형을 언도받아 1년여의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고문의 여독으로 요추 및 척추를 다쳐 평생 불구로 지냈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묘는 북내면 장암리에 있다.

□ 참고문헌 : 국가보훈처, 1986, 『대한민국 독립유공자 공훈록』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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