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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도희

독립운동가이자 행정가이다. 조선시대 인조반정 공신인 원두표(元斗杓)의 11대 손이자 원용규(元容圭)의 아들로 1890년(고종 27) 여주군 북내면 장암리에서 출생하였다. 20세에 한일합방의 비운을 맞이하여 3·1독립만세 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1919년 4월 3일 여주군 북내면에서 이원기·원필희·이원문 등 학생 주동의 독립만세 시위운동에 참가하였다. 4월 3일 김학수·원필희 등과 함께 그의 집에서 태극기를 만들고 있는데 최영무가 찾아와 시위에 참여할 것을 권유해 시위운동에 합류하였다. 하지만 일경(日警)에게 체포되어 심한 옥고를 치렀다. 1921년 효덕전(孝德殿) 참봉(參奉)으로 봉직(奉職)된 후, 영친왕의 종묘(宗廟) 행례시(行禮時) 축관(祝官)으로 배종(陪從)하였다. 1930년대의 암담한 일제강점기 시절, 당시 경기도 시범 사업으로 권장되었던 잠업(蠶業) 진흥을 위해 장산부인회를 지도했다. 해방 후 경기도 고문회 상임고문으로 국정에 참여하여 농촌 진흥과 복리 증진에 노력했으며 1947년 북내면 제2대 면장에 취임하였다. 역사와 전고(典故)에 해박하여 유명한 소설가 월탄 박종화가 소설 『임진왜란』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원호 장군의 여주 남한강 삼벌대 숲 전투와 천서리 파사성 전투, 개군 후미깨(병깨) 전투를 자문 받았다. 이외에도 많은 학자와 극작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묘는 북내면 장암리에 있다.

□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84, 『독립운동사자료집』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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