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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미당

여주 사람으로 이명(異名)은 충효(忠孝)·미당(美堂)이다. 1930년 8월 중국 상해에서 한인여자청년동맹(韓人女子靑年同盟)이 조직되었을 때 5명의 임시위원 중 한사람으로 선출되어 상해 청년여자교민에 대한 조사 및 상해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교민들의 단합을 위하여 활동하였다.

1931년 10월 일제의 무력침략으로 발발한 만주사변 이후 상해에 있는 한인 각 단체대표자회의에 여자청년동맹의 대표로 참석하여 배일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상해 홍구공원(虹口公園)에서 윤봉길(尹奉吉)의사의 의거가 있은 다음 일제의 포악한 탄압을 피해 1932년 4월부터 1936년 5월에 이르는 기간 동안 대한민국임시정부가 가흥(嘉興)· 진강(鎭江)을 거쳐 장사(長沙)로 이동할 때 임시정부 요인들을 수행하며 봉사하였고 장사에 있는 남목청(楠木聽)에서 3당 0통일회의가 열리고 있을 때 이운한(李雲漢)의 저격을 받아 중상을 입은 김구를 정성으로 간호하였다.

1938년 10월에는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원(韓國光復陣線靑年工作隊員)이 되어 선전과 홍보활동에 주력하였고 1943년2월 중경에서 한국애국부인회(韓國愛國婦人會)의 조직부장으로 선출되어 반일의식을 고취하는 방송을 담당하여 활동하였다.

또한 1944년 중국 국민당정부와 대한민국 임시정부간의 협조로 대적선전위원회(對敵宣傳委員會)를 통해 임시정부와 광복군의 활동상황을 우리말로 방송하였고 일본군내의 한국인 사병에 대하여 초모공작을 하면서 한국여성들의 총궐기를 촉구하며 활동하는 한편, 1944년 3월에는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에 입당하여 조국 독립을 위한 활동을 전개해나갔다.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 참고문헌 : 국가보훈처, 1986, 『대한민국 독립유공자 공훈록』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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