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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국

강원도 원주 출신으로 치영(致榮)이라는 이름도 사용하였다. 원주·횡성(橫城)·홍천(洪川) 각지에서 활동하면서 1907년 7월 6일경 부하 70여 명을 인솔하고 여주군 우편취급소를 습격하여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08년 4월 20일에는 한상열(韓相說)·금기철(琴基哲) 외 수 명과 함께 횡성의 일군수비대를 습격하였고, 동년 9월 8일에는 부하 33명과 함께 신림(神林) 헌병분견소를 습격하였다.

또한 1919년 4월 30일경에는 횡성군 북면 냉리(冷里)에서 일본헌병대와, 그리고 10월 24일에는 횡성군 둔내면(屯內面) 영랑리(永浪里)에서 일군과 각각 교전하였다. 그러다가 12월 14일 횡성군 정곡면(正谷面)에서 일본헌병에게 저항하여 도주하고 난 후 강원도·경기도 각지에서 일군수비대 및 일경과 교전하다가 피체되었다. 1909년 6월 8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소위 내란죄로 교수형을 언도받고 항고하였으나 1909년 5월 20일 경성공소원과 동년 6월 5일 고등법원에서 각각 기각, 교수형이 확정되어 순국하였다.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 참고문헌 : 국가보훈처, 1991, 『대한민국 독립유공자 공훈록』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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