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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원

평안남도 대동 출신의 독립운동가이다. 1903년에 평양일어학교를 졸업하고, 1906년에 일본으로 유학하여 메이지대학 법과 전문부에 입학하였으나 1년 후 신병으로 중퇴, 귀국하였다. 1910년부터 6년 동안 평양의 숭실학교(崇實學校)·대성학교(大成學校) 교사로 근무하였으며, 이때 안창호(安昌浩)와 교유하며 민족문제를 협의하였다. 1911년 105인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겪었으며, 출옥 후 실업계에 투신하여 목재상·평양고무공장 등을 경영하는 한편, 숭인(崇仁)·숭의(崇義)·숭실(崇實) 및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의 이사 또는 이사장으로 민족교육발전에 진력하였다. 또, 안창호가 조직한 흥사단에도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1922년 흥사단의 국내조직인 동우구락부(同友俱樂部)를 조직하였다. 1925년 동우구락부를 수양동우회(修養同友會)로, 다시 1930년에는 동우회로 조직을 개편하였다. 1934년 조선소년척후대 평남연맹의 간부로 보이스카우트운동에 종사하다가 1939년 동우회조직이 일본경찰에 발각되어 투옥되었다. 1945년 광복 이후에는 대성학원(大成學院)을 설립하고 운영하였으며, 미군정장관 고문으로 활약하였다. 1948년 한국민주당으로 제헌국회의원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고, 국회부의장에 선임되었다. 1950년 6·25전쟁 때 납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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