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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여주시사

이봉구

1907년 여주군 북내면 운촌리에서 전주 이씨(全州 李氏) 익안대군(益安大君)의 18대손 이광래(李匡來)의 아들로 태어났다. 1910년대에 여주초등학교 전신인 여주심상보통학교를 나온 후 상경하여 경기제1고보(경기고등학교 전신)를 다니다가 3학년 국어 시간에 일인(日人) 선생이 조선 야경(夜景)을 초라하게 비하(卑下)한 시(詩)를 읊는데 분개(憤慨)하여 일단의 학생들과 동맹 휴학하였다. 이 사건으로 퇴학당하고 1926년 배재고보에서 수업을 하다가 후에 국민방위군 부사령관이 되는 윤익헌과 만주로 탈출했다. 중국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려 했으나 아버님의 만류로 귀국해서 동학교를 졸업하고, 경성제대에 입시를 치르지만 동맹휴학 사건으로 낙방하고 연희전문에 입학하였다. 연희전문에서 조병옥, 최현배와 교우하면서 항일 운동을 하다가 중퇴하고 여주로 낙향하여 아버지를 도와 양조업을 운영하였다. 아버지 이광래는 한말(韓末) 왕립 경성사범(서울사대 전신)의 1회 졸업생으로 소학교 교사 및 교장으로 근무하다 퇴임한 인물이다. 양조업을 지속하다가 6·25전쟁의 격동기를 맞아 호국군(護國軍)으로 입대 후 육군보병학교에서 간부후보생이 되어 1946년 소위로 임관하였다. 수원연대와 이천대대를 거쳐 여주중대장으로 근무하였고, 대구 피난을 거쳐 청년방위대로 국민방위군(중령)으로 부산시 동래에 위치한 교육대의 행정처장을 역임하였다. 이후 국회의원 2대, 3대, 5대 선거에 각각 입후보했지만 낙선하였다. 또한 전주이씨여주지회 효종능(孝宗陵) 봉양회장을 20여년 간 역임하였고, 1960년대 초 여주여자종합중고등학교의 전신인 기동여학교를 설립해서 교장을 지내는 등의 장학 사업을 펼쳤으며 경기도 교육위원회 위원을 2회에 걸쳐 8년간 역임하였다. 그리고 군청(郡廳)·경찰서(警察署)·검찰청(檢察廳)의 자문위원과 여주노인회 초대회장(창설자)을 비롯하여 각종 사회단체를 주도하며 왕성하게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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