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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형식

조선말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여흥, 자는 덕여(德汝), 사호(賜號)는 소정(蘇庭)이다. 민유중의 8세손이자 민영필(閔泳弼)의 아들이나 민영목(閔泳穆)의 계자(繼子)가 되었다. 문과급제하여 1888년(고종 25)에 필선(弼善)이 되었으며 1892년 성균관대사성이 되었다. 홍문관부제학 등을 역임하였으며 1893년 이조참판이 되었다. 1895년 왕후궁대부가 되었으며 1897년에는 시강원첨사 등을 거쳐 이듬해 중추원 1등의관이 되었다. 1899년 황해도관찰사에 임명되었고 궁내부특진관 등을 거쳐 1905년 시종원부경이 되었으며 홍문관부제학을 역임하였다.

□ 참고문헌 : 『여흥민씨삼방파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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