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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린

본관은 여흥, 초명은 영기(泳琦), 자는 기옥(奇玉)이며 서울 출신이다. 민술호(閔述鎬)의 아들로 여은부원군(驪恩府院君) 민태호(閔台鎬)에게 입양되었으며 순종(純宗) 비(妃) 순명황후(純明皇后)의 오빠이다. 1890년 별시문과에서 병과로 급제하여 시강원설서에 임명되고 문학, 필선, 이조정랑, 대사성이 되었다. 1898년 비서승(秘書丞)에 이어 궁내부특진관에 임명되었고 이듬해 궁내부협판, 서리대신사무(署理大臣事務), 동지돈녕부사, 경효전제조(景孝殿提調) 등을 지냈다. 1904년 예식원부장(禮式院副長), 내장원감독(內藏院監督)을 거쳐 다시 동지돈녕부사가 되었으며 특명전권공사를 겸임, 일본에 다녀왔다. 그후 비서원경(秘書院卿), 궁내부특진관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고 1907년 시강원첨사(侍講院詹事)에 재임 중 조동윤(趙東潤) 등 15인과 함께 재차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궁내성 사무를 시찰하고 돌아왔다. 그해 11월 규장각제학에 임명되고 이어 장례원경(掌禮院卿), 지돈녕부사를 역임하였다. 1910년 일제에 강제 합병당할 때 일본정부로부터 백작의 작위와 12만원의 은사금을 받았다. 그해 이기동(李基東)과 함께 『제국신문』을 인수하려고 하였으나 사장 정운복(鄭雲復)과의 충돌로 실패하였다. 뒤에 작위를 취소당하였다.

□ 참고문헌 : 『고종실록』, 『여주군지』(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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