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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한

조선 고종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여흥(驪興)이고 호는 경장(景章)이다. 민정중(閔鼎重)의 9세손이자 민영찬(閔泳瓚)의 손자이며 민창식(閔昌植)의 아들이다. 1881년(고종 18)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였고 1888년(고종 25) 감제문과(柑製文科)에 급제하였다. 응교(應敎)와 규장각대교(奎章閣待敎) 등을 거쳐 1890년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을 거쳐 1891년 성균관대사성이 되었다. 1893년 이조참의가 되었으며 1898년 홍릉제조(洪陵提調)가 되었다가 궁내부특진관으로 임명되었다. 1898년 태풍과 해일로 인한 재해에 연루되어 황주군의 철도로 유배되었다가 곧 사면되었다. 1900년 경효전제조(景孝殿提調)가 되었다가 중추원찬의에 임명되었다. 1907년 궁내부특진관이 되어 칙임관 1등에 제수되었으며 그후 기로소비서장으로서 궁내부대신 임시서리를 지냈다.

□ 참고문헌 : 『여흥민씨삼방파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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