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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석

조선말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여흥, 자는 경소(景召), 호는 시남(詩南)이다. 민유중(閔維重)의 9세손이자 민관식(閔寬植)의 아들이나 민경식(閔敬植)의 계자(繼子)가 되었다. 1879년(고종 16) 문과에 급제하여 1883년 승지, 1884년 참의군국사무에 등용되었다. 장은규를 밀파해 1884년 갑신정변(甲申政變) 실패 후 일본에 망명해 있던 김옥균(金玉筠)을 암살하려 했으나 실패하였다. 1886년 이후 예조참판 등을 역임하며 1889년 평안도관찰사에 임명되었고, 1894년에는 당오전(當五錢) 발행으로 조병세(趙秉世)의 탄핵을 받기도 하였다. 1894년 청일전쟁(淸日戰爭)에서 청과 내통하여 일본을 축출하려 했으나 실패하였고, 1895년 민씨(閔氏) 세력의 부활과 함께 군부대신 등의 요직을 지냈다. 관직 외에도 대한천일은행(大韓天一銀行) 등의 경영에 참여하였고, 1910년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점한 이후 일제로부터 자작(子爵)의 작위와 은사금을 받았으며 이왕직장관과 중추원의관을 지냈다. 서도가(書道家)로 이름이 높았는데 특히 행서(行書)에 능하였다. 묘는 대신면 옥촌리(玉村里)에 있다. 1899년에 편찬한 『여주읍지』의 명환(名宦)편에 등재되어 있다.

□ 참고문헌 : 『여흥민씨삼방파보』, 『여주읍지』(1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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