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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진

대한제국(大韓帝國)의 문신으로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성천(聖天), 호는 후몽(後夢)이고 김상헌(金尙憲)의 11대손이며 김병교(金炳喬)의 아들이다. 1871년(고종 8) 문과에 급제하였고 동부승지와 대사성 등을 지냈으며 1894년 형조판서를 거쳐 공조판서가 되었다. 당시 전라도에서 농민군(農民軍)이 봉기하자 조정에서는 전라감사 김문현(金文鉉)을 파직시키고 그 후임으로 김학진을 임명하였다. 하지만 부임하기도 전에 전주성(全州城)이 동학군(東學軍)의 수중에 들어감으로써 전주화약(全州和約)으로 동학군이 물러간 뒤에야 부임할 수 있었다. 그해 9월 농민군이 본격적으로 재봉기할 채비를 갖추자 스스로 책임을 다하지 못하였음을 시인하고 파직을 요청하였다. 1897년 중추원의관, 1899년 궁내부특진관이 되었으며 그 후 시종원경(侍從院卿)과 태의원경(太醫院卿)을 거쳐 1906년 홍문관태학사가 되었다. 1910년 우리나라를 병탄한 일제로부터 남작(男爵)의 작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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