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강의 비상 여주시 여주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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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여주시사

최원

선전관으로서 1559년(명종 14) 명종이 모화관에서 친히 열무하고 환궁할 때 말이 놀라 날뛰어 거의 떨어질 뻔했는데, 명종을 무사히 말에서 내리게 한 공으로 숙마를 하사받았다. 1580년(선조 13) 전라도병마절도사가 되고,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군사 1,000명을 거느리고 의병장 김천일(金千鎰) 등과 함께 여산에서 적군의 진출을 막아 싸웠다. 그후 강화도로 들어가 주둔지로 삼고 군사를 모집하는 한편, 한강 연변지역을 왕래하면서 적의 후방을 공략하고 해상으로 의주에 있는 행재소(行在所)와도 연락을 취하였다. 이듬해 영덕(永德)으로 나가 왜군을 격파하고 200여명을 참획(斬獲), 그 공으로 상호군에 승진되었다. 1594년 여주목사를 지내던 중 사간원의 탄핵을 받아 체직되었고, 1596년 황해도병마절도사를 지냈다.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중앙으로 들어와서 후위대장(後衛大將)이 되어 전위대장 조경(趙儆)과 함께 훈련도감 군사를 거느리고 도성 방위의 책임을 맡았다. 1600년 동지중추부사에 선임되었다.

□ 참고문헌 : 『명종실록』, 『선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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