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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여주시사

이해수

조선 선조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전의이고 자는 대중(大仲), 호는 약포(藥圃) 또는 경재(敬齋)이며, 영의정 이탁(李鐸)의 아들이다. 1563년(명종 18)에 생원으로 알성문과에서 을과로 급제하였다. 곧 검열에 등용되고 설서·봉교 등을 거쳐 1567년에 사가독서(賜暇讀書) 하였다. 그후 응교·동부승지·호조참의·대사간·병조참의·공조참의를 역임하고, 1582년(선조 15)에 성절사(聖節使)로 명(明)에 다녀왔다. 서인으로 1583년에 도승지가 되었으나 동인에 밀려 1585년(선조 18) 여주목사에 제수되어 나갔다가, 1587년(선조 20) 파직되었다. 그러나 다시 복귀하여 충청도관찰사를 지냈으며 다시 대사간이 되었다. 1591년(선조 24) 1월에 특명(特命)으로 여주목사로 재차 부임하였으나 7월에 정철(鄭澈)이 건저(建儲), 즉 세자책봉 문제로 유배되자 함께 연루되어 즉시 파직되고 종성(鍾城)으로 유배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유배지에서 풀려 나와 왕을 의주로 호종하였다. 이어 대사간이 되었다가 1594년에 대사성을 거쳐 부제학에 이르렀다. 저서로 『약포집』이 있다.

□ 참고문헌 : 『명종실록』, 『선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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