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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신

본관은 함평, 자는 덕중(德仲)이다. 1725년(영조 1) 통덕랑으로 증광문과에서 을과로 급제하고, 1730년 정언·지평·장령을 역임하였으며, 1735년과 1743년에 진위겸진향사(陳慰兼進香使)의 서장관으로 청(淸)에 다녀왔다. 1746년 폐사군도(廢四郡圖)를 그려 사군을 다시 설치하고 강역을 확보하여 국방력을 증강할 것을 건의하였고 그해 승지가 되었다. 1749년 대사간에 승진되고, 1751년(영조 27) 여주목사가 되었는데 송시열이 태어난 옥천의 구룡촌(九龍村)을 도점(盜占)하고 늑장(勒葬)하여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기도 하였다. 1757년 강원도관찰사로 나가 선정을 베풀고 1760년 다시 승지가 되어 시폐교정(時弊矯正)에 대한 여러 가지 계책을 진언하였다.

□ 참고문헌 : 『영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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