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강의 비상 여주시 여주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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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여주시사

이심

본관은 전주, 자는 자신(子信)이며, 1593년(선조 26) 별시에서 병과로 급제하였다. 1594년 시강원설서·사서·문학·수찬·부교리 등을 거쳐 1597년(선조 30) 여주에 머물러 있을 때 지평에 제수되었으나 종묘(宗廟)·사직(社稷)이 위태할 때 정사(呈辭)하고 오래도록 조정에 돌아오지 아니하여 사헌부의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다. 1601년 임천군수(林川郡守)로 나갔다가 돌아와서 교리·지평·장령·의정부검상·보덕·사인·집의·상의원정(尙衣院正)·필선 등을 거쳐 1607년 선천군수(宣川郡守)로 나갔다. 1615년(광해군 7) 여주목사를 지냈는데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여 백성을 침해하는 걱정이 끝이 없다는 사헌부의 탄핵으로 파직되었다. 인조반정후 판결사(判決事)를 지냈으나 이괄의 난 때 호가하지 않고 삼대(三代)가 함께 달아나 대간이 삭거사판(削去仕版)할 것을 주장하였으나 파직에 그쳤다. 조정립의 당여로 알려졌다.

□ 참고문헌 : 『선조실록』, 『광해군일기』, 『인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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