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강의 비상 여주시 여주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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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돈하

본관은 전주, 자는 서오(敍五)이며, 이인승(李寅升)의 아들이다. 1868년(고종 5) 정시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872년 통례원우통례(通禮院右通禮)가 되었으며 승지·대사간 등을 거쳐 1874년 5월 여주목사로 부임했다가 이듬해 7월 체직되었다. 이때 신륵사(神勒寺) 강변의 바위에 “동대(東臺)”라고 쓴 각자(刻字)가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1878년 대사성, 1880년 이조참의, 이듬해 가례도감의 진작관(進酌官)이 되었다. 1886년부터 함경감사로 재직할 때 청인(淸人)들의 사무역(私貿易) 확대로 인한 월경(越境) 문제가 자주 발생하여 그 처리를 위하여 힘썼다. 1888년 8월 이용익(李容翊)의 옥사에 연좌되어 여산부(礪山府)에 유배되었으나 곧 방면되었고 11월 동지정사에 임명되어 청에 다녀왔다. 1890년 형조판서를 지내고 1892년 우참찬을 거쳐 판의금부사·예문관제학·홍문관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 참고문헌 : 『고종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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