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강의 비상 여주시 여주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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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여주시사

이경여

조선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전주, 자는 직부(直夫), 호는 백강(白江)·봉암(鳳巖)이다. 1601년(선조 34) 사마시에 입격하고, 1609년(광해군 1) 증광시에서 을과로 급제하였다. 1611년 검열이 되었으나 광해군의 실정이 심해지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관직에 나아갔고 이듬해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체찰사 이원익(李元翼)의 종사관이 되었다. 1630년(인조 8) 부제학·청주목사·좌승지·전라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남한산성까지 인조를 호종하였다. 1640년 여주목사로 있을 때 상(喪)을 당하여 물러났다. 1642년 배청친명파(排淸親明派)로서 청(淸)의 연호를 사용하지 않은 것이 알려져 심양(瀋陽)에 억류되었다가 이듬해 세자와 함께 귀국하여 우의정이 되었다. 1644년 사은사로 청에 갔다가 다시 억류되었으나 이듬해 귀국하였다. 1646년 강빈(姜嬪)의 사사(賜死)를 반대하다가 유배되었으나 이듬해 효종이 즉위하자 풀려나와 다시 영중추부사가 되었다. 이어 영의정으로 다시 사은사가 되어 청에 다녀온 뒤 청의 압력으로 영중추부사로 전임하였다. 부여의 부산서원(浮山書院), 진도의 봉암사(鳳巖祠)와 흥덕(興德)의 동산서원(東山書院)에 제향되었으며, 저서로는 『백강집』이 있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 참고문헌 : 『광해군일기』, 『인조실록』, 『효종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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