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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양

본관은 해평, 자는 시회(時晦), 호는 도재(陶齋)이며, 윤흔(尹昕)으로 개명(改名)하였다. 윤두수(尹斗壽)의 아들이자 영의정 윤방(尹昉)의 아우이다. 성혼(成渾)의 문인으로 경력(經歷)을 지내고 1582년(선조 15) 진사가 되었다. 1595년(선조 28) 별시에서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정자가 되었다. 할아버지의 공으로 성균관전적으로 특진하였으며 1605년(선조 38) 여주목사를 지냈다. 광해군대에 이르러 내외의 관직을 역임하며 우승지에 이르렀다. 1613년(광해군 5) 계축옥사가 일어났을 때 첩의 남동생으로 7서(庶)의 한 사람인 서양갑(徐羊甲)에게 연루되어 파직당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 후 동지중추부사·오위도총부부총관·한성부의 좌윤·우윤 등을 역임하였다.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이 일어났을 때에는 인조를 공주에 호종(扈從)한 공으로 가의대부(嘉義大夫)에 올랐다. 1627년 정묘호란 때에는 왕을 강화로 호종하였으며 이듬해 공조참판이 되었다. 1632·1635년에는 예조참판으로 재직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 때에는 남한산성에 호종하였으며 다음해 서울에 돌아와 지중추부사에 임명되었다. 저서로는 『계음만필(溪陰漫筆)』, 『도재수필』, 『도재집』 등이 있다. 시호는 정민(靖敏)이다.

□ 참고문헌 : 『선조실록』, 『광해군일기』, 『인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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