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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여주시사

윤성진

본관은 해평, 자는 치도(稚道)이며, 윤응규(尹應奎)의 아들이다. 1860년(철종 11) 정시에서 병과로 급제, 이듬해 주천(注薦)되어 정언·지평·부교리·철종실록낭청(哲宗實錄郎廳)·이조참의·대사성·이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1882년(고종 19) 대원군의 명으로 임오군란의 수습을 위해 제물포에 온 일본공사 하나부사(花房義質) 일행의 반접사가 되어 그 일행을 회유하여 서울에 들어가는 것을 막으려 하였다. 그러나 하나부사가 1개 중대를 이끌고 서울로 들어와 대원군을 만나게 해달라고 요청하자, 칭병(稱病)하고 사임함으로써 그 요청을 회피하였다. 1885년 양주목사로 재임할 때 도결 혁파를 내세운 여주 민란(民亂)의 안핵사(按覈使)로 차하(差下)되었으나 조사가 철저하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파직되었다. 대원군이 청(淸)에서 환국하자 지의금부사가 되었고, 1885년 대사헌이 되어 갑신정변의 여당으로 신기선(申箕善)·윤웅렬(尹雄烈) 등의 처벌을 주장하였다. 아관파천 후 수구파 김병시(金炳始)가 의정(議政)이 되어 복고적 정책을 시행할 때 중추원 1등의관에 취임하였다. 광무연간에는 궁내부특진관·홍문관학사를 역임하였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 참고문헌 : 『고종실록』, 『여주읍지』(1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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