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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영

조선 광해군대의 문관으로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사함(士涵), 호는 태정(苔庭)이며, 강원감사 성세평(成世平)의 아들이다. 1573년(선조 6)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병조좌랑·헌납·장령·집의 등을 거쳐 1592년에 여주목사가 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기도순찰사로서 3,000명의 군대를 이끌고 참전하였고, 이듬해 경기좌도관찰사가 되었다. 호조참판에 재직 중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기도 하였으나 1597년 정유재란 때 남정양향사(南征糧餉使)로 군량미 조달을 맡았다. 1599년 이후 공조참판·한성부좌윤·대사헌·예조참판·대사간 등을 역임하고 이듬해 청백리(淸白吏)에 녹선(錄選)되었다. 1601년 한성부판윤이 되고 이듬해 지중추부사로 진하사(進賀使)가 되어 명(明)에 다녀왔다. 충청감사·호조판서·병조판서를 역임하고 1605년 좌우참찬을 거쳐 1607년(선조 40) 이조판서를 지냈다. 이듬해 광해군이 즉위하자 정인홍(鄭仁弘) 등에 의하여 유영경(柳永慶)의 당인으로 몰려 파직되었다가 1616년(광해군 8) 연일(延日)에 유배되어 1623년 배소(配所)에서 죽었다.

□ 참고문헌 : 『선조실록』, 『광해군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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