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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여주시사

서정순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원중(元仲). 서긍보(徐兢輔)의 아들이다. 1871년(고종 8)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검열(檢閱)이 되었다. 공조참의, 동부승지를 거쳐 1875년 대사간이 되었고 다음해에 순천부사로 외직에 나갔다. 그뒤 형조·이조참판, 경주부윤을 거쳐 1882년 12월 여주목사(驪州牧使)에 제수되었고 이듬해 5월 이천부사로 이배(移拜)되었다. 1889년 도승지가 되어 함경도 방곡령(防穀令)사건, 한성개잔(漢城開棧) 문제 등 일본 및 청(淸)과의 복잡한 외교문제를 처리하였다. 1892년 함경감사가 되었다가 1894년 김홍집내각의 공무아문대신이 되었다. 1896년 강원도·함경남도관찰사가 되었으며 1898년 독립협회의 요구에 따른 개각 때 박정양내각의 법무대신이 되었다. 이때 시임대신(時任大臣)으로 ‘만민공동회’에 출석, 의안 11조에 찬성하고 왕에게 올리는 ‘헌의6조’에 서명하는 등 적극 참여하다가 면관되었다. 1899년 중추원부의장으로서 법규교정소의정관(法規校正所議定官)이 되어 대한국국제(大韓國國制) 제정에 노력하였고 태의원경, 궁내부특진관을 지냈다. 1900년에는 홍문관학사, 장례원경, 표훈원의정관, 중추원찬의, 표훈원내관 등을 거쳐 1906년 중추원의장이 되었다. 시호는 효문(孝文)이다. 묘는 여주시 오금동에 있다.

□ 참고문헌 : 『高宗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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