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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성징

본관은 여흥, 자는 사상(士尙), 호는 졸당(拙堂)·용졸(用拙)이며, 성휘(聖徽)로 개명하였다. 호조정랑 민유부(閔有孚)의 아들이다. 1606년(선조 39) 생원시에 입격하였고, 1609년(광해군 1) 증광문과에서 병과로 급제하였다. 승문원에 보임되고 사관·호군(護軍)·사용(司勇)을 지낸 후 강원도사·영변판관(寧邊判官)과 금산군수를 거쳐 1623년(광해군 15) 여주목사에 제수 되었다. 인조반정을 계기로 내직에 들어와 동부승지·우승지를 거쳐 개성부유수·전라도관찰사를 지내고, 형조참판 재임 중이던 1627년(인조 5) 명(明) 숭정제(崇禎帝)의 등극진하사의 부사로 다녀왔다. 1630년 평안감사가 되어 부체찰사를 겸하여 30여군의 변방 강화에 힘썼으며 함경감사를 지낼 때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병사 서우신(徐祐申)과 함께 보병과 기병 1만 3,000명을 영솔하고 많은 활약을 하였다. 1640년 척화파로 심양(瀋陽)에 잡혀갔다가 1642년에 귀환하여 호조·형조판서를 지냈으며, 1647년 사은부사로 북경(北京)에 도착하여 그곳에서 병사하였다.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평양과 정주에 그의 생사당(生祠堂)이 건립되었다. 시호는 숙민(肅敏)이다. 저서로는 『송경방고록(松京訪古錄)』이 있다.

□ 참고문헌 : 『광해군일기』, 『인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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