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강의 비상 여주시 여주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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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언경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시보(時甫), 호는 동강(東岡)이며, 영흥부사 남치욱(南致昱)의 아들이다. 서경덕(徐敬德)의 문인으로 박순(朴淳), 박민헌(朴民獻) 등과 교류하였다. 1566년(명종 21) 학행으로 천거되어 헌릉참봉이 되었고 이어서 지평현감·공조좌랑이 되었다. 1568년 이이·기대승·황수신·윤두수·윤근수·황정욱·이제신·이산해·최경창 등과 더불어 제술관이 되어 당대의 석학들과 친밀한 교분 관계를 넓혔다. 1569년(선조 2) 공조정랑·청풍군수를 거쳐 1573년(선조 6) 양주목사가 되어 도봉서원을 건립하였다. 1575년(선조 8) 지평을 거쳐 장령·장악원정·사복시정을 역임하였다. 1580년(선조 13) 사헌부집의로 있을 때 이발(李潑) 일파와 싸우다 위기에 처한 정철을 구하려 노력하다 파직·좌천되어 파주목사로 나갔다. 1585년(선조 18) 전주부윤에 이어 공조참의로 돌아왔다. 1589년 정여립의 모반사건이 일어나자 전주부윤으로 있을 때 정여립에게 지어준 시(詩)가 빌미가 되어 사헌부의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다. 1592년(선조 25)에 여주목사로 기용되었고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박순·정엽·김상용 등 피난중인 사대부를 규합하여 의병을 일으켜 여러 곳에서 전과를 올렸다. 그러나 이요(李瑤)와 함께 이황(李滉)을 비판하고 양명학을 숭상한다 하여 탄핵을 받고 삭탈관작 되어 양근의 영천동(靈川洞)에 물러나 한거(閑居)하다가 67세로 별세하였다.

□ 참고문헌 : 『明宗實錄』, 『宣祖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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