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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함

조선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상주(尙州), 자는 경화(景和), 호는 성옹(醒翁)이다. 1588년(선조 21) 진사가 되고 다음 해 증광시에서 병과로 급제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연안(延安)에서 의병을 모집하고 군량을 조달하는 일을 맡았으며 1594년 군공청(軍功廳) 도청(都廳)이 되었다. 예조·공조 좌랑과 비변사낭청·호조정랑·직강·사예 등의 중앙 관직과 선천·청풍·단천·성천·장단·안주의 지방관을 역임하였다. 광해군 때 군기시정이 되었으나 1617년(광해군 9) 폐모론이 일자 이항복, 정홍익(鄭弘翼)의 의견을 좇아 반대하다가 남해(南海)에 유배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풀려나 집의·예조·병조·형조·공조의 참의와 승지·부제학·대사성·대사간을 거쳐 1629년(인조 7) 여주목사가 되었으며 춘천부사를 거쳐 1636년 대사헌에 이르렀다. 청백리로 뽑혔으며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사천의 구계서원(龜溪書院), 온성의 충곡서원(忠谷書院), 배천의 문회서원(文會書院), 북청의 노덕서원(老德書院), 안주의 청천사(淸川祠) 등에 제향 되었다. 시호는 충정(忠貞)이다. 저서로는 『성옹유고』가 전한다. 한편, 영월루 근린공원내의 역대 여주 수령 선정비군에는 1630년(인조 8)에 세운 김덕함의 청백애민비(淸白愛民碑)가 있다.

□ 참고문헌 : 『광해군일기』, 『인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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