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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적

조선 인조대(仁祖代)의 충신이자 효자로 본관은 하동(河東)이고 자는 사길(士吉)이며 호는 안분당(安分堂)이다. 군자감정(軍資監正) 정여호(鄭如虎, 1502~1591)의 손자이자 함평현감(咸平縣監) 정응린(鄭應麟)의 장남이다. 임진왜란때 여주 옥은동(지금의 흥천면 신근리)에서 의병을 일으킨 아버지를 수행하며 많은 왜적과 전투를 벌여 전공(戰功)을 세웠다. 그러나 강원도에 군량미를 조달하러 간 사이 지평의 고라산에서 아버지와 더불어 부인 청풍 김씨와 동생인 정괄, 정일이 왜적과의 전투에서 모두 순절하는 참극을 당하였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정적은 이후에도 왜군의 섬멸에 적극 노력하였다. 왜란이 끝난 후에 부호군을 잠시 지냈으나 곧 낙향하여 안분당(安分堂)이라 자호(自號)하며 지냈다. 그러다가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바로 어가 호위를 위해 달려갔으며 그 공으로 원종공신에 봉해졌다. 사후 호조참판에 증직되었으며 충효로써 정려문을 하사받았다. 묘는 능서면 용은리에 있으며 정려문이 지금도 흥천면 신근리에 남아 있다.

□ 참고문헌 : 『하동정씨대동합보』(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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