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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수익

조선 인조대의 효자로 야은(冶隱) 길재(吉再)의 7세손이다. 세종대왕 영릉의 수호군(守護軍)으로서 여주 왕기촌(王基村, 지금의 왕터)에 살았다. 1629년(인조 7) 4월 아버지를 모시고 마을 사람들과 함께 대동놀이차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배가 침몰되어 자신은 겨우 탈출하였으나 아비가 나오지 못한 것을 알고는 물로 다시 뛰어 들어가 아비를 안고 나오다가 미처 언덕에 오르기도 전에 힘이 빠져 죽고 말았다. 이웃 사람들이 가엾은 생각에 그물을 던져 꺼냈더니 부자가 서로 껴안고 있어서 풀리지를 않았다고 한다. 지방 유림의 정려 상소와 경기도관찰사의 계문에 따라 1670년(현종 11) 고향인 능서면 왕대리 왕터마을에 정려문이 하사되었으며, 1828년(순종 28)과 1932년의 2번에 걸쳐 정려각을 중수하였다. 그리고 1966년 효자비(향토유적 제15호)도 다시 세웠다. 1899년에 편찬된 『여주읍지』의 충효열(忠孝烈)편에 등재되어 있다.

□ 참고문헌 : 『여주읍지』(1899), 「길효자정각중건기(吉孝子旌閣重建記)」(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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