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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중보

일정한 범위내의 친족들이 같은 곳에서 벼슬을 하거나 청송관(聽訟官) 또는 시관(試官)이 될 수 없도록 하는 제도를 상피제(相避制)라 한다. 특히 문관의 인사 전형을 담당하는 이조(吏曹)와 무관의 인사 전형을 맡은 병조(兵曹), 통틀어서 전조(銓曹)는 그 권한이 막강했으므로 권력의 집중과 전횡을 막기 위해 상피제가 엄격히 적용되었다. 예컨대 명종 때 송기수(宋麒壽)가 이조참판이 되고 여주 사람 신광한(申光漢)이 병조참판이 되었는데 서로 혼인 관계가 있다하여 신광한이 교체되었다. 숙종 때는 여주 사람 홍명하가 이조판서로 있었는데 조카인 홍중보가 병조판서로 임명되자 대간이 이의를 제기하여 홍중보의 임명을 취소했던 일이 있었다.

홍중보의 본관은 남양, 자는 원백(遠伯), 호는 이천(梨川)이고, 평안도관찰사 홍명구의 아들이며 참판 신감(申鑑)의 외손이다. 1635년(인조 13) 진사시에 장원으로 합격하고 인조의 특명으로 영릉참봉·동궁시직이 되었다. 1645년 별시문관에 병과로 급제하여 병조·공조·형조·예조참판을 지내고 수원부사를 거쳐 도승지 4번, 대사헌 3번, 대사간을 2번이나 역임했다. 1664년(현종 5) 지경연사가 되고 호조판서·병조판서·우참찬·판의금부사를 거쳐 1669년 우의정이 되었다. 홍중보는 청(淸)의 사신이 올 때마자 늘 현관례(見官禮)에 참석하지 않으려고 사직을 청하였다. 이는 그의 아버지가 평안감사로 있다가 병자호란 때 전사했기에 청(淸)을 원수로 여긴 때문이었다. 묘는 원래 금사면 이포리의 선영에 있었는데 양평(楊平)으로 이장하였다. 익흥군(益興君)에 봉해졌고 시호는 충익(忠翼)이다.

□ 참고문헌 : 『인조실록』, 『효종실록』, 『현종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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