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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식

조선 고종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남양, 자는 중육(仲育), 호는 금석(琴石)이고, 영의정 홍순목의 아들이다. 박규수(朴珪壽)의 문하에서 김옥균, 박영효(朴泳孝), 서광범(徐光範) 등과 함께 개화사상에 심취하였다. 1873년(고종 10)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정자·대교·직각 등을 역임하였다. 1881년 신사유람단(紳士遊覽團)의 일원으로 일본을 다녀왔고, 1882년 홍문관부제학·규장각직제학이 되었으며 부호군으로 임오군란의 수습에도 참여하였다. 1882년 9월 수신사(修信使)로서 다시 일본을 방문하였고, 1883년 7월 보빙사(報聘使)의 일행으로 미국(美國)을 방문해서 20대 아더 대통령을 만나기도 했다. 개화된 일본과 미국을 돌아본 홍영식은 신문명의 국내도입을 역설하고 대중적 교육제도 실시와 우편제도의 개혁 등에 앞장섰다. 그러나 임오군란이후 청(淸)의 간섭이 심해지면서 보수파가 득세하게 되자 홍영식을 비롯한 개화파들은 1884년 12월 우정국 낙성식의 축하연을 이용하여 이른바 갑신정변을 일으켰다. 3일 만에 정변이 실패로 돌아가던 날 홍영식은 임금의 마음을 돌리려 북관묘(北關廟)까지 따라갔다가 청병(淸兵)에게 피살되었다. 1894년 갑오경장 때 신원되고 규장각대제학에 증직되었으며 시호는 충민(忠愍)이다. 묘는 흥천면 문장리에 있다.

□ 참고문헌 : 『갑신일록(甲申日錄)』, 『매천야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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