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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시형

1864년(고종 1) 동학의 교조 최제우(崔濟愚)가 죽은 후 동학은 위기를 맞았다. 최제우의 카리스마를 누군가가 계승해야 했고 그가 예언했던 후천개벽(後天開闢)의 시대가 언제 실현될 것인가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현실 정치에 관심을 기울이던 동학교도들을 이끌고 동학을 명실상부한 종교로 승화시킨 인물이 최시형이다.

최시형의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경오(慶悟), 호는 해월(海月)이고, 초명은 경상(慶翔)이며, 최종수(崔宗秀)의 아들이다. 5세 때 어머니를 여의고 12세 때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난 후 17세 때 제지소에서 일하며 생계를 유지하였다. 19세 때 손병희(孫秉熙)의 여동생과 결혼하였고, 1861년(철종 12) 동학(東學)에 입문하였다. 1863년 8월 최제우로부터 도통을 이어받았다. 1878년(고종 15) 개접제(開接制), 1884년 육임제(六任制)를 마련하여 신도들을 합리적으로 조직하고 교리 연구를 위한 집회를 만들었다. 1880년에 강원도 인제에서 『동경대전(東經大全)』을 간행하였고, 1881년에는 단양(端陽)에서 『용담유사(龍潭遺詞)』를 간행하였다. 1892년 전주 삼례역(參禮驛)에서 1차 교조신원운동을 벌이고, 1893년 서울 광화문(光化門)에서 2차 신원운동을 전개하였다. 1894년 1월 전봉준(全琫準)의 고부(古阜) 관아 습격을 시작으로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9월부터 전 신도들과 함께 무력투쟁에 적극 가담하였다. 동학농민운동이 좌절된 이후 관군을 피해 다니면서 포교에 힘썼다. 1897년 이천시 설성면 수산리의 신정희(申正羲) 집에 머물며 농민전쟁 이후 지리멸렬해진 동학조직을 다시 정비하다가 8월 초순 몸에 이상이 생겨 여주의 전거원(全巨院), 즉 지금의 여주군 강천면 도전리로 옮겨 치료하였다. 이때 이천에서 쫓아 온 관군에 의해서 체포 위기를 맞았으나 잘 모면하였다. 이후 손병희에게 도통을 전수하였고, 1898년 원주의 산중에 숨어 있다가 한때 동학교도였던 황만기(黃萬己)·박윤대(朴允大)·송일회(宋日會) 등의 밀고로 체포되어 서울에서 교수형을 당했다. 1907년 고종의 특지로 신원되었다. 그는 각자가 철저하게 수도하고 동학의 가르침에 따라 생활하면 반드시 후천개벽의 새로운 지상천국이 실현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묘는 금사면 주록리에 있다.

□ 참고문헌 : 『매천야록(梅泉野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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