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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언

조선 숙종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창녕, 자는 미백(美伯), 호는 우의당(愚意堂)이고, 증(贈) 승지 조한상의 손자이며 부사 조전주의 아들이다. 1682년(숙종 8) 증광시에 진사가 되고 태학(太學)에서 유림(儒林)의 집강(執綱)이 되어 1689년(숙종 21) 우계 성혼과 율곡 이이의 문묘(文廟) 출향(黜享) 반대에 앞장섰다. 1695년(숙종 21) 경릉(敬陵) 참봉(參奉)과 장릉(莊陵) 도감(都監)으로 배수 되었으나 사양하고 나가지 않고 학문에 전념하다가 43세로 일찍 졸(卒) 하였다. 글씨를 잘 썼으며 사후 이조참판에 증직(贈職)되었다. 묘는 대신면 장풍리에 있다.

□ 참고문헌 : 『창녕조씨족보』(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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