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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대

조선 순조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창녕, 자는 사원(士元), 호는 동포(東浦)이고, 광흥창수(廣興倉守) 조명준의 아들로 여주 포동(浦東, 대신면 보통리)의 시골집(국가지정 중요 민속자료 제126호)에서 태어났다. 1779년(정조 3)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검열과 홍문관부교리를 거쳐 1786년(정조 10) 홍문관응교 재직 중에는 홍국영(洪國榮) 사건의 관계자 처벌에 관한 삼사(三司)의 연소(聯疏)에 참여했다가 한때 파직 당했다. 이듬해 대사성·이조참의·대사간·대사헌이 되었으며, 1801년(순조 1) 형조판서·예문관제학·판의금부사·이조판서·황해도관찰사·병조판서 등을 역임했다. 1811년(순조 11) 동지사로 청(淸)에 다녀 온 후 한성부판윤, 1813년(순조 13) 판돈녕부사·지중추부사에 이르러 치사(致仕)했다. 저서로 『최열사전(崔烈士傳)』이 있으며 글씨에 능해 강릉의 오봉서원경적비(五峰書院經蹟碑)를 썼다. 묘는 대신면 보통리에 있다.

□ 참고문헌 : 『정조실록』, 『순조실록』, 『조선명신록』, 『창녕조씨지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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