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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준

임원준의 본관은 풍천이고 자는 자심(子深), 호는 사우당(四友堂)이며, 고려 때에 밀직사판사를 지낸 임군보(任君輔)의 증손이다. 10세에 글을 지어 신동으로 불렸다.

1444년(세종 26) 생원한성시(生員漢城試)에서 남몰래 서로 과문을 보고 베껴 쓴 죄로 적발된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중 한 사람이 임원준이다. 그의 부정행위는 장(杖) 90대와 징역에 해당하는 도(徒) 2년 반에 해당하는 죄였으나 곧 감형되었고 과거응시 자격만 정지되었다. 1447년 과거를 통하지 않고는 고급 관리로 나갈 수 없었기에 종7품 부사정의 벼슬에 있던 임원준이 “…유사(有司)에서 시험할 때에 과거보는 무리들이 형제가 있거나 혹은 친구가 있어서 다투는 경쟁에서 서로 서로 구원하여주는 것이 예사로운 관습이었기에 법에 저촉되는 줄 모르고 죄를 지었습니다. … 벌을 받은 이후 크게 뉘우치고 있으며 그동안 2차례나 과거를 보지 못하였으니 시험을 볼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 하였으나 세종대왕은 이를 허락지 않았다. 임원준은 1455년(세조 1)에야 비로소 과거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회복하였는데 이듬해 문과에서 장원급제하여 사헌부장령·봉상시판사를 거쳐 이조참의를 비롯하여 호조·예조·병조·형조참판을 지냈다. 1466년 발영(拔英)·등준(登俊)시험에 합격하여 예조판서와 의정부의 좌·우참찬이 되었다. 1471년(성종 2) 좌리공신(佐理功臣) 3등에 책록되어 서하군(西河君)에 봉해졌다. 여주에는 선산이 있어서 별장과 사우당이란 정자를 짓고 자주 내려와 살았다. 지금의 영월루 자리에 있었으리라 짐작되는 사우당의 ‘사우(四友)’는 밭 갈고, 소치고, 고기 낚고, 나무하는 농(農)·목(牧)·어(漁)·초(樵)의 네 가지를 벗 삼는다는 뜻이다. 임원준은 문장으로써 이름이 났고 풍수(風水), 의약(醫藥), 복서(卜筮)에도 능통했다. 그러나 총명하고 슬기로워 재주는 있으나 사람됨이 교만하고 경박하여 재주가 덕을 앞서는 자로 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또한 아들 임사홍과 손자 임숭재가 그의 간사함을 계승하였다 하여 세상은 임원준을 대임(大任)이라 하고 임사홍과 임숭재를 소임(小任)이라 불렀다. 시호는 호문(胡文)이다. 묘는 여주시 능현동에 있다. 1760년에 편찬한 『여주목읍지』의 인물편에 등재되어 있다.

□ 참고문헌 : 『세종실록』, 『세조실록』, 『성종실록』, 『연산군일기』, 『여주목읍지』(1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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