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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익

조선 인조대의 명신으로 본관은 전주, 자는 공려(公勵), 호는 오리(梧里)이다. 태종의 왕자인 익녕군 이치의 4세손으로 수천군 이정은(李貞恩)의 증손이며 함천부수 이억재(李億載)의 아들이다. 1564년(명종 19)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1569년(선조 2) 별시문과에 급제하였다. 이이(李珥)에게 인정받아 여러 차례 중앙관으로 천거되었다. 1604년(선조 37) 호성공신에 녹훈되어 완평부원군에 봉해졌다. 성품이 소박하고 단조로워 과장이나 과시할 줄 모르고 소임에 충실하고 정의감에 투철하였다. 선조, 광해군, 인조를 임금으로 모시면서 다섯 차례나 영의정을 지냈으나 그의 집은 두어 칸짜리 오막살이 초가였으며, 퇴관 후에는 조석(朝夕)거리조차 없을 정도로 청빈하였다. 1615년(광해군 7) 광해군이 선조의 계비인 인목왕후를 폐위하여 서궁(西宮)에 유폐시키려 하자 이를 반대하던 이원익은 가족의 만류를 뿌리치고 극렬한 어구로 상소문을 초하여 홍천(洪川)으로 귀양 갔다가 여주에 이배(移配)되었다. 마침내 인목대비가 쫓겨나자 여기서 반정(反政)의 명분을 찾은 이귀(李貴), 김류(金瑬), 이괄(李适) 등이 당시 백성들의 존경을 받던 이원익의 동의를 구하기 위해 원두표를 여주로 보내 묵시적 동의를 얻었다. 반정이 성공해 인조가 등극하자 이원익은 다시 영의정이 되었다. 저서로 『오리집(梧里集)』과 『오리일기(梧里日記)』 등이 있고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1760년에 편찬한 『여주목읍지』의 인물편에 등재되어 있다.

□ 참고문헌 : 『선조실록』, 『광해군일기』, 『인조실록』, 『여주목읍지』(1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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