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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여주시사

이여

조선 숙종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덕수, 자는 자삼(子三)·치보(治甫)이고, 호는 포음(浦陰)·수곡(睡谷)이다. 이조판서 이식의 손자이자 이신하(李紳夏)의 아들이다. 1662년(현종 3)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680년(숙종 6)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검열이 되었다. 헌납·집의·사간 등을 역임하고 부제학·대사성·이조참의·대사간·대사헌·대제학 등이 되었다. 또 1702년 좌의정, 1706년 판의금부사, 1710년 영의정을 역임하였다.

이여는 도승지로 있을 때 벼슬을 그만두고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고향 여주로 내려왔다. 당시 이여는 기도(器度)가 단정하고 깨끗하며 문사(文辭)가 풍부하고 우아했으며 언론이 구차하지 않고 조행(操行)이 확고하여 김창협(金昌協) 다음가는 명망을 얻고 있었다. 그런 그가 매번 아버지의 유계(遺戒)와 어머니의 병환을 이유로 조정에 오래 머물러 있지 못했다. 지위가 공상(公相)에 올랐으나 몸가짐은 한결같이 포의의 선비처럼 하였으며 거주하는 집이 좁고 누추하였으나 거처하는 데에 여유가 있었다. 임종할 즈음에는 온화하여 마치 편안히 잠자는 것 같았는데 다음날에 이르러서도 얼굴색이 조금도 변하지 아니하니 사람들이 모두 기이하게 여겼다고 한다.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1899년에 편찬한 『여주읍지』의 명환편에 등재되어 있다.

□ 참고문헌 : 『숙종실록』, 『여주읍지』(1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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