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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식

월상계택(月象谿澤)이란 이른바 조선중기의 4대 문장가를 일컫는 말이니 월사 이정구, 상촌 신흠, 계곡 장유, 택당 이식이 그들이다. 대사간 이식이 인조의 생부인 정원대원군에 대한 추숭(追崇)에 반대하다가 임금의 노여움을 사 강원도 간성현감으로 좌천되었을 때 자신의 처지를 빗대어 쓴 시가 바로 우리에게 친숙한 도루묵 시(詩)다.

이식의 본관은 덕수, 자는 여고(汝固)이고, 호는 택당(澤堂)·남궁외사(南宮外士)·택구거사(澤癯居士)·일표거사(一瓢居士)이다. 좌찬성에 증직된 이안성(李安性)의 아들이고 공조참판 윤옥의 외손이다. 어릴 때부터 병약하여 13세에 외가댁이 있는 여주로 내려와 요양과 함께 글공부를 병행하였다. 외삼촌인 윤백순(尹百順)의 지도를 받던 그는 1610년(광해군 2) 생원시에서 3등을 하였고 그해 별시 문과에 급제하였다. 1626년(인조 4) 대사간·대사성·좌부승지를 지내고 1638년 대제학, 1643년 대사헌·형조·이조·예조판서를 역임하였다. 사후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여주 기천서원에 제향되었다. 『인조실록』에 다음과 같이 졸기(卒記)가 전한다. “인조 25년 6월 13일 전 이조판서 이식이 죽었다. 소탈하고 빼어나며 통명하였고 전아하고 고상하며 검소하였다. 어려서부터 박람강기(博覽强記)하였고 문장이 절묘하여 한 시대에 우뚝하였다. 혼조(昏朝)에는 여강에 물러나 살면서 임숙영(任叔英), 여이징(呂爾徵), 정백창(鄭百昌), 조문수(曺文秀)와 더불어 글 짓고 술 마시는 모임을 만들어 강호에서 노니니, 많은 사람들이 흠모하였다. 반정하게 되자 청현(淸顯)의 직을 두루 거쳤고 세 번이나 문형을 맡았다. 병술년에 시제(試題)의 일로 죄를 얻으니 모두가 원통하게 여겼다” 하였다. 저서로 『택당집(澤堂集)』이 있다.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1760년에 편찬한 『여주목읍지』의 인물편에 등재되어 있다.

□ 참고문헌 : 『인조실록』, 『택당집』, 『여주목읍지』(1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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