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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전

조선 세조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병보(屛甫), 호는 존양재(存養齋)이다. 목은 이색의 손자이고 이종선(李鍾先)의 아들이며 양촌(陽村) 권근(權近)의 외손이다. 1427년(세종 9) 친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집현전 학사가 되었다. 매월당 김시습의 스승이기도 했던 이계전은 1453년(단종 1) 계유정난(癸酉靖難)에 참여하여 정난공신(靖難功臣) 1등에 녹훈되었고 단종 복위를 위한 거사를 계획했던 사육신을 제거한 공로로 좌익공신(佐翼功臣) 2등에 봉해졌다. 이계전은 사육신의 한사람인 백옥헌(白玉軒) 이개(李塏)의 숙부였다. 목은의 4남중 막내아들인 이종선이 다섯 아들을 두었는데 이개의 아버지 이계주(李季疇)가 맏아들이었고 이계전은 셋째 아들이었다. 이들의 운명이 이렇게 갈린 것은 권람(權擥)의 영향 때문이었다. 권근의 손자로 수양대군의 수족이었던 권람은 이계전의 외사촌 동생이다. 권람은 그 부친인 권제(權踶)가 왕명을 받들어 『고려사』를 편찬하던 중에 사사로운 정리로 곡필(曲筆)한 것이 발각되어 1449년(세종 31) 고신(告身)과 시호를 추탈 당하자 그 환수의 방편으로 수양대군에게 빌붙어 반역을 도모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외사촌형인 이계전을 포섭하여 수양의 측근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1455년 이조판서가 되었고 이듬해 판중추부사에 임명되었다. 1459년(세조 5) 경기체찰사에 이어 영중추원사로 있다가 죽었다. 세조가 죽은 후 비인 정희왕후(貞熹王后) 윤씨가 계속되는 왕실의 불행이 시아버지인 세종대왕의 능을 잘못 쓴 탓이라 여겨 천릉(遷陵)을 계획하는데 그 천장지(遷葬地)가 바로 지금의 영릉 자리에 있던 이계전의 묘소였다. 그래서 이계전의 묘는 점동면 사곡리로 이장하였다. 시호는 문열(文烈)이다.

□ 참고문헌 : 『세종실록』, 『세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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