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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옥

조선중기에 또 한 명의 여주 출신 왕비가 등장할 뻔 했다. 조선의 제13대 임금 명종은 인순왕후(仁順王后) 심씨(沈氏)와의 사이에 단 한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그가 바로 순회세자(順懷世子)였다. 순회세자는 1559년(명종 14) 7월에 한살 연상인 호군(護軍) 윤옥의 둘째 딸과 결혼했으나 1563년 13세로 요절하였다. 혼자 남은 세자빈인 공회빈(恭懷嬪) 윤씨는 시어머니 인순왕후의 유명(遺命)으로 동궁(東宮)에서 거처하다가 임진왜란이 일어나던 해인 1592년에 41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였다. 이 비운의 딸을 둔 아버지가 윤옥이다.

윤옥의 본관은 무송(茂松), 자는 자온(子溫), 호는 동리(東里)이고, 판서 윤사익(尹思翼)의 아들이며 택당(澤堂) 이식(李植)의 외조부이다. 모재 김안국에게서 배워 1531년(중종 26) 진사 시험에 합격하고 1540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예조·병조·형조의 좌랑·정언·전적·수찬과 사헌부의 지평·헌납·장령, 그리고 직제학·동부승지를 지냈다. 1553년(명종 8) 이후 남양·수원·인천부사, 양주·해주목사·한성부좌윤을 거쳐 동지돈녕부사·오위도총부부총관으로 재직하다가 죽었다. 사후 좌의정에 증직되었고 『조선명신록』에 기록되었다. 묘는 대신면 보통리에 있다.

□ 참고문헌 : 『중종실록』, 『명종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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