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강의 비상 여주시 여주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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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호

1592년(선조 25) 4월 14일 20만 왜군의 선봉으로 소서행장이 이끄는 18,700명의 병력이 부산에 상륙함으로써 임진왜란이 발발하였다. 충주 탄금대에서 신립(申砬)의 군대를 격파한 왜군은 파죽지세로 한양을 향해 올라오다가 여주의 남한강 신륵사에서 제동이 걸리는데 이는 원두표의 할아버지인 강원도 조방장 원호가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원호의 본관은 원주, 자는 중영(仲英)이고, 첨지중추부사 원송수의 아들이다. 김덕수(金德秀)에게 글을 배워 어려서부터 경사(經史)에 통달하였다. 그러나 윤두수(尹斗壽), 윤근수(尹根壽), 이해수(李海壽) 등 교유하던 친구들과는 달리 과거에 계속 낙방하자 탄식하고는 문(文)을 버리고 무(武)를 택하여 1567년(명종 22) 무과에 급제하였다. 선전관으로 임명된 뒤 경주통판으로 옮겨갔다가 운산·단천군수를 지내고 경흥부사를 거쳐 경원부사가 되었다. 경원부사로 있을 때 북쪽의 여진족 니탕개(尼湯介)가 침입하자 부하를 거느리고 적진 깊숙이 쳐들어가 적병을 모두 격퇴하였다. 1587년(선조 20) 전라우도 수군절도사로 재직 중 전라좌도에 왜구가 침입하였는데 이 사실을 통고받지 못해 정상을 모르고 있다가 인책되어 고향 여주에 머물렀다. 향병(鄕兵)을 이끌며 한때나마 왜군의 한양 진격을 저지시키는데 성공했던 원호는 당시 원주에 주둔하고 있던 왜군의 일단이 구미포(龜尾浦)에 들어가 약탈을 일삼자 새벽에 적의 감시병을 포로로 잡아 이들을 앞세워 적을 습격하여 대파하였다. 이는 왜란초기 한강에서 거둔 조선군 최초의 승리였다. 구미포에서 적을 섬멸한 원호는 마탄(馬灘)으로 가서 이천부사 변응성(邊應星)과 협공하여 왜군에게 커다란 타격을 주었다. 의주로 몽진(蒙塵)길에 올라있던 선조는 이 승전보를 듣고 기뻐하며 원호에게 경기·강원 방어사겸 여주목사의 벼슬을 내렸다. 이후 원호는 북쪽에 있는 왜군 토벌의 임무를 맡고 금화(金化)로 진군하던 도중 적의 복병을 만나 포위되자 깊은 산의 낭떠러지에서 투신하고 말았다. 금화 고을 사람들이 이를 애통히 여기고 밤에 몰래 시신을 거두어 고향인 여주까지 운구하여 북내면 장암리에 안장하였다. 사후 좌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충장(忠壯)이다.

□ 참고문헌 : 『선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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