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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손

조선 영조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원주, 자는 자정(子靜)이고, 예조판서 원경하의 아들이다. 젊은 시절 한때 국수(國手)라 불릴 정도의 이름난 노름꾼이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아들의 솜씨를 시험해보고자 투전장 속에서 미리 인장(人將)을 빼내 감추어 놓고서 인장을 찾아 뽑아 올리라 하였다. 못하면 크게 매질하겠다는 엄포가 뒤따랐다. 원인손이 투전장을 받아 쥐고 한참 동안을 만져보더니 “이 속에는 인장이 없습니다” 하니 원경하가 손에 쥐었던 인장을 내어 보이고는 감탄하여 말을 잇지 못하였다. 이런 아들을 잘 다독거리며 학업에 전념하게 하였다. 1740년(영조 16) 진사시에 합격하고 1752년 세자익위사세마가 되었다가 이듬해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세자시강원설서·정언·사서 등을 역임했다. 이조참의·이조판서를 거쳐 1772년 우의정이 되었다. 원인손은 아버지가 주장했던 대탕평(大蕩平)의 정신을 이어받아 편당에 기울어지지 않음으로써 영조(英祖)의 총애를 받았다. 성격이 평직(平直)하고 사장(詞章)에 능했다. 1769년에 왕명으로 울릉도(鬱陵島)의 지세와 물산을 그리고 조사하여 바쳤다. 시호는 문민(文敏)이다. 묘는 대신면 상구리에 있다. 1899년에 편찬한 『여주읍지』의 명환편에 등재되어 있다.

□ 참고문헌 : 『영조실록』, 『여주읍지』(1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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