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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만석

조선 현종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원주, 자는 군옥(君玉), 호는 고산(孤山)이고, 좌의정 원두표의 아들이다. 1649년(인조 27)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정원주서에 기용되고 지평, 정언, 문학등을 역임하였다. 1656년(효종 7) 경상도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 진구어사(賑救御使)가 되어 여러 읍을 순회하면서 민정을 보살피고 기민을 구제하여 은덕을 폈다. 1659년 황해도관찰사가 되었으나 사우(祠宇)의 신주(神主)를 도둑맞아 추고(推考)의 처분을 받았다. 이후 병조참지와 좌부승지를 거쳐 1664년(현종 5) 우승지가 되었다. 성격이 쾌활하여 일을 처리함에 과단성이 있었고 민정을 잘 살폈다. 한때 권력을 남용하였다는 비평을 받기도 하였으나 대체로 명관으로 알려졌다. 묘는 북내면 장암리에 있다.

□ 참고문헌 : 『인조실록』, 『효종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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