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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두추

조선 현종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원주, 자는 자중(子中), 호는 거업와(居業窩) 또는 장산(長山)이다. 원계군(元溪君) 원유남(元裕男)의 아들이자 원두표의 동생이며 현석(玄石) 박세채(朴世采)의 장인이다. 1623년 아버지와 형을 따라 인조반정에 참여하여 공신에 책봉될 수 있었음에도 사양하고 받지 않았으며 나이가 어리고 학문이 미숙하다며 출사도 하지 않았다. 원두추는 한때 진잠(鎭岑)현감에 제수되었으나 병자호란 이듬해 굴욕적인 항복으로 화의가 성립되자 고향 여주에 집을 짓고 은거하며 『오경(五經)』과 『근사록(近思錄)』 등을 깊이 연구했다. 그러다 친구의 권유로 다시 벼슬길에 나와 익위사사어·공조정랑·의성현감·선산부사·충주목사·광주부윤 등을 지냈다. 1660년(현종 1) 원두추가 충주목사 재직시에 곡식을 많이 비축해둔 것이 기근을 이기는데 크게 도움이 되자 조정에서 공론이 일었다. 성리학에 상당한 조예가 있었으나 학문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아 그것을 아는 이는 조익(趙翼), 장유(張維) 등 몇 사람에 불과했다고 한다.

□ 참고문헌 : 『인조실록』, 『효종실록』, 『현종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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