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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경순

조선 영조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원주, 자는 도이(道而) 또는 도이(道以)이다. 좌의정 원두표의 현손이자 진천현감 원명직(元命稷)의 아들이고 문경공(文敬公) 이여(李畬)의 외손이며 영조의 계비(繼妃)인 정순왕후의 외숙이다. 원경순은 여주읍에 살면서 8세에 한시(漢詩)를 지어 천재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일찍 부모를 잃었지만 농사와 공부를 병행하며 과거의 꿈을 버리지 않았던 그는 1736년(영조 12)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수찬·헌납·교리·사간·응교 등의 청요직(淸要職)을 번갈아 지냈다. 원경순은 1741년 재산을 모두 소실하고 가난한 생활에 찌들면서도 18세 때 어머니를 여읜 뒤 아버지가 맞아들인 계모의 봉양에 극진하였다. 1753년 양주목사가 되었고 대사간·대사헌·도승지·전라도관찰사·강화유수를 역임했다. 우참찬을 거쳐 1764년에 예조판서가 되었으나 노모의 병구완을 위해 사직하고 여주로 돌아왔다. 이후 공조판서·경기도관찰사로 있다가 사직한 뒤 1765년 1월 5일 타계했다. 그가 죽자 영조는 친히 제문을 지어 치제하였으며 시호는 정헌(正獻)이다. 묘는 북내면 장암리에 있다.

□ 참고문헌 : 『영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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