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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계달

판소리 유파는 동편제(東便制)와 서편제(西便制), 그리고 중고제(中高制)로 나뉘어 진다. 송흥록(宋興祿)을 시조로 삼아 섬진강 동쪽의 남원·순창·구례·곡성 등지에서 발전한 것이 동편제요, 박유전(朴裕全)을 시조로 삼아 섬진강의 남쪽 광주·나주·화순·보성 등지에서 발전한 것이 서편제이다. 이와는 달리 염계달과 김성옥(金成玉)을 시조로 삼아 경기도와 충청도에서 발전된 것이 중고제이다. 중고제의 시조가 바로 여주 사람 염계달이다. 염계달은 순조·헌종·철종 연간에 활약했던 전기 8명창 중의 한 사람이다. 여주에서 태어나 충주에서 살았으며 모흥갑(牟興甲), 송흥록(宋興祿)과 동년배이다. 그가 소리공부를 시작하던 시절의 일화를 소개한다.

“염계달은 어려서부터 소리에 남다른 재질을 타고 났지만 집안이 가난하여 18세가 되어서야 자신의 평생소원인 소리 공부를 위해 부모님의 승낙을 얻어 벽절(신륵사)로 갔다. 가는 도중에 길에서 『장끼전』 이야기 책 한 권을 줍게 되는데 ‘이는 하늘이 나를 도우심이라’며 몹시 기뻐했다고 한다. 뒷날 염계달은 이때 주운 『장끼전』을 판소리로 창작하여 명성을 얻게 되었고, 특히 헌종의 총애를 입어 동지벼슬을 제수 받고 어전 광대가 된다. 10년 소리 공부를 작정하고 벽절에 도착한 염계달은 주지승에게 절에서 머슴 일을 하는 대신 식사와 잠 잘 곳만 마련해 달라고 사정하였고 마침내 허락을 얻어 경내 청소와 나무, 설거지 등을 하면서 나머지 시간은 절 뒤편의 동굴 방에서 소리 공부에 열중했다. 밤에 소리를 연습할 때면 졸음을 쫓기 위해서 상투에 끈을 연결해 천장에 매달아서 잠을 깨우며 공부에 열중하였다. 이런 정진 끝에 『춘향가』와 『흥보가』의 연마는 물론 『장끼전』을 만드는데 심혈을 기울여 마침내 득음(得音)을 이루었다. 그런데 절에 들어갈 때 가진 것이라고는 옷 한 벌 밖에 없었던 염계달은 해가 거듭됨에 따라 옷이 헤져 누덕누덕 기운 누더기 옷이 되었다. 공부를 마친 염계달이 세상 밖으로 나가고자 하였으나 입고 나설 옷이 없어 고민하던 어느 날 법당에 거물급 손님이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혹시 옷이라도 한 벌 얻어 입을까하여 그곳을 기웃거리다가 키다리 스님에게 ‘거지꼴로 어디를 기웃거리냐’며 썩 꺼지라는 호통을 받았다. 모멸감과 비애감에 젖어 자기 방으로 돌아온 염계달은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흥보가』 중에서 가난타령을 불렀는데 그 처절하고 슬픈 소리가 절 구석구석까지 울려 퍼져 불공을 마친 부인의 귀에까지 들리게 되었다. 그 부인은 충주부사의 수청 기생 ‘보영’이었는데 염계달의 딱한 사정을 듣고 옷과 돈 20냥을 내 놓았으며 며칠 후 충주 감영에서 소리를 할 수 있도록 주선까지 해주었다. 거기서 염계달은 『장끼전』을 불렀고 이후 세상에 널리 명성을 얻게 되었다.”

판소리는 우조(羽調), 평조(平調), 계면조(界面調) 외에 경드름, 설렁제, 추천목 등의 선율 구조로 구분되는데 염계달은 경드름과 추천목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경드름은 경조(京調)라고도 하며 주로 서울 사람이나 왈짜(건달)들의 행동을 묘사하는 대목에 사용된다. 『춘향가』 중 「이몽룡이 춘향을 달래는 대목」이나 「남원골 한량들이 변사또를 욕하는 대목」이 경드름에 해당된다. 추천목은 ‘반경드름’이라고도 하며 『춘향가』 중 「잦은 사랑가」, 『수궁가』 중 「세상으로 살아나온 토끼가 자라를 욕하는 대목」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특히 『수궁가』에서 「토끼가 별주부에게 욕하는 대목」에서는 “경기도 여주 염계달 경조로 해보던 것이었다.”를 반드시 붙인다고 한다.

□ 참고문헌 : 『판소리 소사(小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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