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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제

조선 태종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여흥, 자는 중회(仲晦), 호는 어은(漁隱)이고, 민변(閔忭)의 아들이며 태종의 장인이다. 1357년(고려 공민왕 6)에 문과에 급제한 후 국자직학·춘추관검열·성균사예·전교부령을 역임하였다. 우왕 때 지춘주사·예의판서가 되었고 창왕 때 개성윤(開城尹), 공양왕 때 예조판서를 지냈다. 조선이 개국되자 여흥백에 봉해졌으며 문하우정승과 좌정승을 거쳐 태종 즉위 후 여흥부원군으로 개봉되었다. 타고난 자질은 어질고 검소했으며 경사에 밝았는데 특히 사학(史學)을 잘하였다. 시호는 문도(文度)이다. 여흥부원군 민제의 성품을 단적으로 설명하는 일화가 성현(成俔)이 지은 『용재총화(慵齋叢話)』에 다음과 같이 실려 전해지고 있다.

“여흥부원군 민제가 조회에서 물러나오면 매양 이웃집에 가서 바둑을 두었다. 하루는 공이 미복(微服)하고 이웃집에 갔더니 주인이 나오지 않으므로 홀로 누각 위에 올라앉았다. 어떤 녹사가 공을 모시러 공의 집에 왔다가 공의 간 곳을 물으니 문지기 아이가 ‘공께서 외출하셨는데 가신 곳을 모르겠습니다’ 하였다. 녹사도 새로 온 사람이라 역시 공의 얼굴을 몰랐다. 그는 이웃집에 가서 누각에 올라가 신을 벗고 다리를 문에다 걸치고 공에게 말하기를 ‘노인은 뉘십니까’ 하니 공이 ‘이웃집에 사는 사람이오’ 하였다. 녹사가 ‘노인의 얼굴에 주름살이 많은데 어찌 된 일입니까. 실로 가죽을 꿰매어 쪼그린 것이 아닌가요’ 하니 공이 ‘타고난 바탕이 그런 걸 어찌 하겠소’ 하였다. 녹사가 또 ‘노인은 글을 아십니까’ 하니 공이 ‘다만 성명을 기록할 정도요’ 하였다. 또 옆에 바둑판이 있기에 녹사가 ‘노인은 바둑을 둘 줄 아십니까’ 하니 공이 ‘다만 행마할 정도요’ 하였다. 녹사가 ‘그러면 한 판 두어보는 것이 어떻습니까’ 하고 드디어 바둑을 시작하여 상대하자 공이 바둑을 두며 말하기를 ‘어디서 온 손님이요’ 하니 녹사는 ‘부원군을 뵈러 왔습니다’ 하였다. 공이 ‘나는 부원군이 되지 못하였소’ 하니 녹사가 ‘암탉은 아직 울지 못합니다’ 하였다. 이러는 중에 조금 있다가 주인 영감이 꿇어앉아 ‘제가 영공께서 여기 오래 계신 줄 몰랐습니다’ 하고 대죄하여 마지않으므로 녹사가 놀라 신을 쥐고 도망치니 공이 ‘저 사람은 비록 새로 들어온 시골 사람이지만 의기가 뛰어나서 보통 인물이 아니다’ 하고 이로부터 극히 후히 대접하였다.” 1899년에 편찬한 『여주읍지』의 인물편에 등재되어 있다.

□ 참고문헌 : 『고려사』, 『고려사절요』, 『용재총화』, 『여주읍지』(1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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