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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이현

조선 정조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여흥, 자는 공저(公著), 호는 관생와(觀生窩)이다. 민유중의 현손이자 민우수의 손자이며 민백첨(閔百瞻)의 아들이다. 장인인 참판 김양행(金亮行)에게 일찍부터 수학하여 문명이 자자하였으나 과거에 응시하지 않았다. 1777년(정조 1) 학행(學行)으로 태릉참봉에 천거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1784년(정조 8) 전생서직장(典牲署直長)으로 있으면서 문효세자(文孝世子)의 책봉례(冊封禮)를 거행한 뒤 경연관(經筵官)으로 선발되었으나 사직하였다. 여러 차례의 관직 제수에도 번번이 사임하였으나 1787년 사헌부장령에 부임하였다. 반계(磻溪) 유형원(柳馨遠)을 사숙(私淑)하여 학문의 각 분야에 능통하였으며, 특히 실천적인 학풍을 중시하였다. 사후 대사헌에 추증되었다. 1899년에 편찬한 『여주읍지』의 은일편에 등재되어 있다.

□ 참고문헌 : 『여흥민씨삼방파보』, 『여주읍지』(1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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