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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응수

조선 영조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여흥, 자는 성보(聲輔), 호는 오헌(梧軒)이다. 민시중의 손자이고 민진주의 아들이며 대사헌 조태동(趙泰東)의 사위이다. 1710년(숙종 36) 진사시에서 장원하였고, 1715년(숙종 41) 음직으로 호조정랑에 이르렀으나 신임사화(辛壬士禍) 때 사직하였다. 1724년 영조가 즉위하자 다시 정랑이 되었고 1725년 문과급제하여 정랑과 정언 등을 거쳐 1726년 사간이 되었다. 정미환국(丁未換局)으로 파직되었으나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났을 때 호서안무사(湖西安撫使) 김재로(金在魯)의 종사관으로 군기를 엄정히 하는 등의 공을 세워 동래부사가 되었다. 1733년(영조 9) 사은겸동지부사(謝恩兼冬至副使)로 청(淸)에 다녀왔다. 1727년 병조판서로 있으면서 당론(黨論)을 제기한다 하여 파직되었고 이듬해 경기도관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1740년 이조판서, 1743년 예조판서, 1746년 형조판서를 거쳐 우의정에 이르렀다. 뒤에 이광좌(李光佐) 등의 관작 추탈을 상소하다 면직된 채 죽었으며 글씨로도 이름이 높았다. 시호는 문헌(文憲)이다. 1899년에 편찬한 『여주읍지』의 명환편에 등재되어 있다.

□ 참고문헌 : 『여흥민씨삼방파보』, 『여주읍지』(1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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