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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유중

조선 숙종대의 외척(外戚)으로 본관은 여흥, 자는 지숙(持叔) 호는 둔촌(屯村)이고 강원도관찰사 민광훈(閔光勳)의 아들이며 이조판서 이광정(李光庭)의 외손(外孫)이다. 1649년 진사가 되고 1651년(효종 2)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예문관검열·병조좌랑·사헌부 지평, 경성판관을 거쳐 전라도관찰사·이조참의·충청도관찰사를 지냈다. 민유중은 1657년 사노(私奴)들의 싸움에 휘말려 억울하게 경성판관으로 쫓겨간 일이 있었는데 백성들을 잘 다스렸기에 그가 떠나올 때 어린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모두 수레를 가로막고 눈물을 흘리며 이별을 슬퍼하였고 비석을 7개나 세워 그의 덕을 칭송하였다. 이후 형조판서·한성부판윤·호조·공조·병조판서가 되었으며 1681년 3월 딸이 왕비에 책봉되어 인현왕후가 되자 여양부원군에 봉해지고 이어 영돈녕부사(領敦寧府事)가 되었다. 이듬해에 금위영(禁衛營)의 창설을 주도하여 병권과 재정권을 모두 관장하였는데 외척이 벼슬을 하여 국가의 변란을 초래하였다는 교리 이징명(李徵明)의 상소가 있자 관직에서 물러나 두문불출하다가 죽었다. 이때가 인현왕후가 폐위되기 2년 전인 1687년이다. 문집으로 『민문정유집(閔文貞遺集)』이 있으며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묘는 여주읍 능현리(陵峴里)에 있다. 1899년에 편찬한 『여주읍지』의 명환편에 등재되어 있다.

□ 참고문헌 : 『효종실록』, 『숙종실록』, 『민유중신도비문』, 『여주읍지』(1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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