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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우수

조선 영조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여흥, 자는 사원(士元), 호는 섬촌(蟾村) 또는 정암(貞菴)이고 민유중의 손자이며 민진후의 아들이다. 또한 송준길의 외증손(外曾孫)이며 농암 김창협의 문인이다. 1717년(숙종 40) 사마시에 장원으로 합격하고 이듬해 성균관에 들어갔다. 1726년 태릉참봉(奉陵參奉) 등에 제수되었으나 물러나 학업을 계속하였다. 1743년(영조 19)에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사헌부 지평을 역임하고 1750년(영조 26) 원손보양관(元孫輔養官)이 되었으며 1752년 대사헌에 특진된 후 찬선(贊善)과 공조참판·좨주(祭酒)를 거쳐 대사헌이 되었다. 한편 퇴어(退漁) 김진상(金鎭商), 그리고 목곡(牧谷) 이기진(李箕鎭), 낙촌(樂村) 이규진(李奎鎭) 형제와 더불어 여강을 노닐고 남긴 「여강기회록(驪江耆會錄)」이 전한다. 또한 어려서부터 글씨를 잘 썼으며 해서는 양송체(兩宋體)의 정수를 얻어 거의 핍진(逼眞)하였다. 명필 송준길의 외증손답게 양송체를 완벽하게 구현해낸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이만창(李晩昌) 묘표(墓表)가 있으며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1899년에 편찬한 『여주읍지』의 은일편에 등재되어 있다. 묘는 여주시 능현동에 있다.

□ 참고문헌 : 『여주읍지』(1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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