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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규호

조선 고종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여흥이고 자는 경원(景圓)이며 호는 황사(黃史)인데 지당(芝堂)이라 사호(賜號)받았다. 민유중의 6세손이자 민상섭(閔相燮)의 손자이며 민치오(閔致五)의 아들이다. 1858년(철종 9)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이듬해인 1859년(철종 10) 문과급제하여 명성황후(明成皇后)에 의해 중용되기 시작하여 1867년(고종 4) 이조참의로 등용되었으며, 이조참판을 거쳐 한성부우윤을 지냈다. 1873년 흥선대원군이 하야하자 국정을 장악하고 민씨 일족(一族)의 대표적 정객(政客)으로 정권에 깊숙이 참여하였다. 후에 쇄국을 지양하고 개항할 것을 내세우는 개국론(開國論)을 주장하고 막후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1878년 우의정에 임명되었으나 7일 만에 사망하였다. 시호는 충헌(忠獻)이다.

□ 참고문헌 : 『여흥민씨삼방파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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